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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易

갑골문으로 읽는 주역 2

 

갑골문으로 읽는 주역.

 

 

 

주역은 청동기 시대를 엿볼 수 있는 책의 화석이다. 우리가 공룡의 화석으로 2억년전에 멸망한 공룡의 시대를 파악 하듯 5천년전의 선사 시대를 담아 내고 있는 주역을 통하여 그 시대를 파악 할 수 있다.  최초의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오늘날에도 주역은 점치는 책으로 여전히 유효 하다. 그러나 주역은 결단코 점치는 책이 아니라는 사람들이 있다. 주역은 천지 만물의 조화를 담아낸 철학서이자 사상서라는 것이다.

 

주역은 은나라 말, 주나라 초기에 완성된 책이다. 은말 주초는 청동기 시대다. 청동기 시대는 청동기를 자유 자재로 주조 하고 옥을 이용 하여 여러가지 장식을 만들며 수레와 그믈 각종 토기류등을 생산 하며 하나의 문명을 꽃 피워 가던 시기다. 그때에는 이미 매우 발달한 형태의 문자가 나와 정치와 경제 관계의 일들을 기록 하고 정보로 만들어 축적 하고 있던 때이다.

 

19세기부터 발굴 되기 시작하여 아직도 계속 발굴 되고 있는 은허갑골과 주대 명문에 기록된 갑골문, 금문등이 우성오, 동작빈등 수많은 학자들의 노력으로 약 4천여자의 갑골문자가 해독이 되었다. 동작빈은 갑골문이 비슷한 시기의 이집트의 상형문자나 납서문자보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형태의 문자라 했다. 이미 갑골문은 문자의 기본인 조자, 방법, 육서를 모두 충족 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갑골문으로 주역을 읽어본 이유는 간단 하다. 주역이 청동기 시대에 만들어진 책이라면 의당 당시의 문자인 갑골문으로 쓰였을 것이고 부족(?) 하나마 이미 해석된 4천여자를 통하여 주역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주역의 원형으로 추정 되는 괘사와 효사는 약 4천5백자 정도로 되어 있다.

 

나는 도효수등 10여명의 학자들이 편집한 은허갑골각사류찬, 이효정의 은허갑골문자집석을 기본으로 이미 해독된 4천여자를 미니 사전으로 만들어 놓고 주역을 읽었다. 박전,상전 ,문언전, 계사전등은 아에 고려의 대상으로 삼지도 않았다. 갑골문식 주역과, 오늘날 우리가 사용 하는 해서체 한자의 주역은 생각외로 심각 했다. 주역의 온갓 해석본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元亨利貞, 利見大人.

 

건괘에 나오는 이 문장은 주역 64괘속에 빈발하는 문장이다. (원하고 형하고 이롭고 곧다, 대인을 만나 이롭다)로 해석 되어온 이 문장은 갑골문으로 읽으면 이런 문장이 된다.( 크게 제사를 지내면 이로울까요? 큰 사람을 만나면 이롭다.)

원형이정의 해석은 술수학파와 상수학파 주역가들에 의해 점사(卜辭)로 인식 되어 오던 문장이기도 하다.  곤괘에 君子有攸往主利西南得朋東北喪朋安貞吉.이 있다.

 

군자가 나아갈 곳이 있으면 먼저 잃고 뒤에 얻으니 이롭다. 서남쪽에서 친구를 얻고 동북에서 친구를 잃는다. 오래도록 바르게 하면 좋다.

 

이제껏 모든 주역의 해석은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득붕상붕을 갑골문으로 읽어 보자.  得은 갑골문에서 마노조개를 들고 있는 모양이다. 朋은 마노조개 貝를 두개 합쳐 놓은 모양이다. 마노조개는 청동기 시대 資와 斧와 더불어 쓰이던 화폐다.

 

一貝 雙貝 朋. ㅡ 일패가 열개 모이면 붕이다.

十朋之龜. ㅡ 십붕이나 나가는 좋은것.

 

은허갑골에 있는 문장들이다. 車不其之十朋(그 수레를 십붕으로 사지 못한다)라는 문장도 있다. 주역의 붕은 친구를 말한 것이 아니라 재물을 말한것임을 알 수 있다. 후대로 가며 재물은 천하고 친구는 좋은것이란 사상과 싱징이 가미 되어 변한것이다. 주역 64괘는 이런 식으로 교란되고 부회첨삭된 경우가 수도 없었다. 64괘중(64괘를 전체 해석 했지만) 14, 대유괘와 18, 고괘를 소개 한다.

 

14괘. 大有.元亨.

初九.無交害.匪咎.
艱則無咎.
九二.大車以載.
有攸往.無咎.
九三.公用亨于天子.
小人弗克.

九四.匪其彭.無咎.
六五.厥孚交如.威如.吉.
上九.自天祐之.
吉無不利.


 

어른이 고기를 들고 가 큰 제사를 지내다.

 

대유원형이라 한다. 대유괘는 크게 길한 것이다로 대부분의 역자들이 해석을 하고 있다. 맞는 해석이다. 그러나 이 문자식 해석은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한자의 변동 과정을 이해 하면 이 해석이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한자는 상은 시대의 갑골문 ㅡ주나라의 금문 ㅡ선진 시대의 대전ㅡ진나라의 소전ㅡ 한나라의 예서ㅡ  위진시대의 해서ㅡ 그리고 현대 중국의 간자체로 진화해 온 문자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 하는 한자는 해서체(楷書)다.  해서체는 위진 남북조와 한나라의 예서체를 이어 받아 오늘날까지도 큰 변동 없이 쓰이고 있다.

 

해서체가 대체적이고 대중적인 것이지만 주역을 해서체로 읽는 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청동기 시대의 문자로 쓰여진 주역을 천년도 더 지난 후에 완성된 문자로 읽는다면 어떻게 문제가 없을 수 있겠는가. 대유원형이 대표적이다.

 

해서체의 해석은 대유는 크고 형통 하다 이다. 그러나 갑골문으로 읽으면 전혀 뜻이 달라 진다. 大는 갑골문에서 사람이 정면으로 서 있는 모습이다. 有를 '호광위'는 又의 가차라 하고 '서중서'는 牛의 이자체라 말한다. 갑골문은 무엇인가 자라는 모습,  또는 잘라 놓은 모습이다. 금문은 손으로 고기를 잡고 있는 모습이다. "설문해자'는 있어서는 안될 어떤 것이라 한다. 어떤가 갑골문의 해독과 해서체의 해독은 하늘과 땅이다. 초구의 무교해는 백미다.

 

해서체ㅡ 無交害 서로 해가 없다.

갑골문 ㅡ 無交害 노예들이 다리를 꼬며 춤을 춘다.

 

갑골문에서 무는 사람이 춤을 추는 모습이다. 원래 舞에서 無가 파생된 것이다. 무가 춤추다의 뜻에서 가차된 형태다. 交는 갑골문 설문해자 모두 사람이 다리가 교차된 모습으로 인식 한다.害는 사람이 머리를 따고 있는 모습 고대의 노예들은 모두 머리를 따는 풍습이 있었기에 노예를 가르키는 희의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로간에 해가 없다는 것과 노예들이 다리를 꼬며 춤을 추고 있는 모습과는 얼마나 큰 차이가 나는가. 실로 믿어 지지 않는다. 초구의 뜻은 이렇다.

 

ㅡ노예들이 다리를 꼬며 춤을 춘다. 허물이 아니다. 작은 어려움도 허물(문제)이 아니다.

 

갑골문과 해서의 차이는 1도 정도 교차를 하며 수천년을 달려온 두대의 기관차와 비슷 하다. 처음에는 별 차이가 아니었지만 지금은 하늘과 땅의 차이다. '무교해'의 해석의 차이는 의미나 상징의 수준이 아니라 중국어와 몽고어의 차이 처럼 서로 생소 하다. 그러나 해석이 이토록 다르다 해서 실망할 일은 아니다. 주역의 원형은 어차피 살며 사랑 하며 갈등 하고 죽는 그리고 행복해 지기를 원하는 인간의 역동성에 있기 때문이다.

 

청동기 사람들의 주역은 이 역동성을 거칠고 투박 하게 담아 내고 있다고 보면 된다. 다만 후대로 가면서 멋 부리기 좋아 하는 사람들의 해석도 나름으로 인정을 해 주면 그뿐일 것이다.

건괘는 원시 주역이 가장 교란된 괘중의 하나다. 건괘는 주역의 처음괘란 상징성이 있기에 온갓 인사들이 달려 들어 호화무비의 치장을 한 괘다. 오늘날 국내에 전하는 한국인으로 주역 전체를 분석 하고 정리한 사람은 10명( 권근.이황, 이이, 서경덕, 정약용, 한원진 오순재 김도수 구한말 이전)미만이다. 그중에서 주역에 아낌 없는 비판을 가한 오재순(1700-1740)이 찬한 건괘를 보자.

 

ㅡ 잠룡은 천하에 때가 오지 않았음을 말하고 쇠란이 극성한 때다. 군자의 의가 순임금이 깊은산에 거함이고 안자가 여항에 거함을 말함이다. (구이) 견룡은 때가 됨이다. 그리하여 순임금이 거처하던 곳이 마을이 되는 것이다. (구삼)육효를 합하여 말하면 때가 늘어난 시기이고 내외괘를 나누면

내괘의 끝에 거하여 항룡이 됨으로 쇠란의 때가 되니 의있는 군자가 때를 기다려 나가는 것을 말함이다.  (오재순 순암집)

 

건괘의 이 해석은 공자 주자 왕필 세사람을 합석 시켜도 하기 힘든 해석이다. 유장 하기가 장강과 같고 고고 하기가 학과도 같다. 한치의 비판이 없는 찬탄 일색이 흠이라면 흠이다. 오재순은 정조의 사랑을 받던 학자다. 오재순은 진보적 학자라 할 수 있다. 그는 순암집에서 주역과 연관 지어 공자 주자를 공박 하는데 주저 하지 않는다.

 

ㅡ 역은 상극의 도에 근본 해서 만들었으므로 넓고 크고 정밀 하게 구비 되어 부족하고 빠진것이 없으니 이는 의리의 책이다. 하도의 도가 성한자에게 복을 주고 악한 자에게 벌을 주니 이는 점복의 책이기도 하다. 본래는 점복의 책인데 문왕 주공 공자등이 의리로 꾸몄다고 하는 말은 잘못이다.

역은 본래 의리와 점복으로 관통 되어 있었다. 관통은 오직 현자만 안다. (오재순 순암집)

 

오재순은 명문의 사족으로 몇 고을의 수령을 거치기는 했으나 길지 않은 삶속에서 언제나 주역에 대한 깊은 사색으로 산 사람이다. 오재순은 주역안에서는 공자도 주자도 믿지 않았다. 누구보다 공맹의 도에 충실 했던 사람이고 보면 그의 이 발언은 뜻밖이다. 그러나 이상 하다. 이황도 권근도 정약용까지도 주역을 논하는 자리에서는 공자와 주역의 주역관을 논박 하고 있다. 성리학에서 공자 주자는 금도였다. 감히 그 두사람을 비판 하는 자체가 총살(?)감이던 시대였다. 그러나 주역의 장에서는 금도가 없다.

 

큰 수레에 재물을 잔뜩 싫고 가니 어려움이 있을리 없다(구이) 제후에게 가져갈 재물이니 소인이 감당 하기에는 힘들다(구삼) 무조건 기대려는 것은 이니란다(구사) 분수도 알고 예의도 알기에 잘 될 것이라고 한다(육오)

 

주역은 64괘로 구성 되어 있다. 건곤으로 시작 하여 감리로 끝나는  상경 30괘, 함양으로 시작 하여 기제로 끝나는 하경 34괘다. 대체적으로 상경 30괘는 천지자연의 일을 하경 34괘는 인간의 일을 논하고 있기에 상하경으로 나뉜듯 하다. 그러나 주역 64괘는 처음부터 번호가 매겨져 있었던 것이 아니다. 64괘가 서로 연관을 갖고 주고 받는 철학이 있기는 하지만 64괘가 군대에 입소한 것도 아닌데 1번부터 64번 까지 질서정연 할 필요는 없다.

 

이것을 무슨 신비한 무엇이나 되는듯 숫자의 질서를 논하고 그속에 갖혀 헤메는 것은 허망한 일이다. 주역의 64괘는 가늘고 긴 산편(竹片)에 적혀 둥근 산통에 꽂혀 있던 자리가 원자리다. 산통 속에서 64괘가 번호를 마추어 서 있을 수는 없다. 점사(占辭)가 차례가 있다면 그건 사기다. 산통은 작은 우주다. 산편은 우주속에 들어 있는 삶의 속성(길 흉)이다.

 

주역의 64괘가 산통에 들어 있던 것이 초기 주역의 모습이다. 종이가 일상적인 필기구가 되고 출판 환경이 좋아 지면서 주역은 오늘날의 미적 감각 까지 가미된 주역이 되었다고 보면 된다. 산편 보다 조금 크고 많은 정보량을 담을 수 있는 방법이 죽간이다. 죽간은 10세기 까지 범 동양적으로 쓰이던 필기 형태다.

 

신라시대 유적지의 하나인 성산산성에서 발견된 죽간 한점이 있다. 신라 백제 시대의 문자 기록은 약간의 비문과 이런 죽간이 전부다. 산성을 관리 하던 관원이 사용 하던 장부의 하나로 추정 되는 죽간의 내용이 눈길을 끈다.

 

ㅡ古陀尹骨利村阿那衆智卜利古支.

 

이 글자는 이두다. 고타현 고리촌에 사는 아나가 사람들을 모아 점 잘치는 곳을 알아 보았다는 말이다. 이 문장을 학자들은 지명+인명+곡물+수량이란 이론으로  해석을 한다. 고리촌 사람들이 합동으로 점을 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점을 생활화 해온 민족이다. 삼국시대는 물론 고려 시대는 점복의 천국이라 해도 관언이 아니었다.

 

송나라 사람 고경의 고려도경은 개경에 열 집 중 한 집은 점치는 집이라 기록 하고 있을 정도다. 대유괘는 점치는데 있어 중요한 것이 성의(有)라 말한다. 성의는 잘 썬 고기다. 청동기 시대에 고기는 돈(貝)보다 값진것 이었다. 성의는 정갈한 고기를 바치고 읍민은 물론 노예들의 마음가지도 하나로 하여 큰 읍민을 다스리는 제후와 외교 관계를 잘 할적에 하늘도 돕는다고(상육) 말한다.

 

주역의 신은 제천신이다. 하늘이 대유괘에서 처음으로 나왔다. 하늘이 나(自 코를 상징)를 도우니

길하지 않을 일이 없다는 것이다. 대유괘는 일을 성사 시키기 위해서는 성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성의는 고기를 신께 바치는 것, 노예도 아끼는 것, 그리고 이웃 국가도 잘 챙기는 것으로 알았다.

 

   18괘.  고(蠱).

 

       蠱 元亨 利涉大川 先甲三日 後甲三日.

 

(초육) 幹父之蠱 有子 考無咎 蠣終吉.

(구이) 幹母之蠱 不可貞.

(구삼) 幹父之蠱 小有悔 無大咎.

(육사) 裕父之蠱  往見吝.

(육오) 幹父之蠱 用譽.

(상구) 不事王侯 高尙其事.

 

 

큰 제사를 지내다 큰 내를 건느면 이롭다. 내는 갑일의 3일전이나 후에 건너면 좋을 것이다.

 

 

고(蠱)는 벌레의 이름이나 상은(나라)이 세력을 넓히던 지역에 살던 독충으로 마취나 환각 약제로도 사용 되던 것이다. (설문)은 뱃속의 벌레라 하고 갑골문에도 독이 있는 벌레가 모여 있는 모양이다. 독충이 그륵(皿)위에 있는 모습인 것이다. 좋지 않은 형상인 것이다. 갑일은 날자를 말한다.청동기 사람들은 60일을 한주기로 한 달력을 쓰고 있었다. 갑골문의 점사에도 한결같이 날자가 가장 먼저 나온다.

 

주역에서 갑일을 특정 한것은 동양 역사에 중요한 여파를 남긴다. 후에 한 무제가 주역의 (고괘)를

들어 정사를 펼친것도 한 사례다. 주역이 동양  정치사에 일찍 부터 응용 되었다는 말이다.

 

ㅡ 역에 갑일의 3일전과 후에 내를 건넌다 한다. 짐은 해가 지기전에 아직 추수를 다 하지 못했으니

몸을 정갈 히 하고 교외에 나가 제사를 올려야 하겠다.(한서)

 

청동기 사람들에게 날자를 안다는 것은 곧 하늘을 아는 것과 마찮 가지라는 인식이 있었다. 날씨를 알아야 나라(邑)를 운용 할 수 있었을 것이고 농사를 지을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청동기 사람들은 날씨의 정보를 알기 위해 많은 노력과 고민을 한다. 초기 주역에 나타난 이 고민은 주한대를 거쳐 송나라 때까지 계속 된다.

 

하도의 수나 낙서의 수, 오행등 여러 생각들이 나타나 주역의 색깔과 두께를 화려 하고 두껍게 만든다. 이곳에서 나타난 숫자 신비주의는 주역의 발전에 중대한 오류와 함께 대중화를 시키는 데에는 한몫을 단단히 하기도 한다. 다음이 주역 상수학파들의 오류의 대표적인 케이스다. 중국 한국을 통 털어 현재 상수 학파의 최고 대가로 통한는 대산 김석진의 말이다.

 

 

ㅡ바둑판은 가로 세로 19줄로 되어 361(19x19=361)점 으로 되어 있는 오락 기구다. 기국(棋局)의 棋는 期와 통하는 말로 돌, 때, 기약을 말한다. 360은 주천상수(周天象數)를 뜻한다. 360일을 달로 계산 하면 30년이다. 흑백을 번갈아 놓으면 1세(30년) 인데 주역 상경이 30괘로 끝나는 것과 같다.

 

또 360번째 효인 수택절(水澤節)이 마디로써 도수를 정하고란 말이 30을 마치면 선후천(先後天)이 바뀌는 것을 암시한 것이다. 바둑판이 각 방향에서 18줄씩 72줄로 되어 있는 것이 이를 뒷받침 한다. 우주의 순환 주기를 129.600년으로 볼때 360분의 1이 360이 된다. 이러한 순환 주기를 음양(흑돌과 백)이 운행 하되 72회로 다투게 되면 (요임금으로 부터 72갑자)가 되면 후천이 오는 것이다.ㅡ

 

 

대산 선생의 이말을 조금 더 부언 설명 하면 이런 말이다. 19는 하도수 10과 낙서수 9를 합한 숫자다. 선천(하도) 후천 (낙서)을 합하여 놓는 다는 것이다. 1에서 19까지를 차례로 더 하면 361이 된다. 가운데 천원을(1) 빼면 주천 상수라는 것이다.

 

또 19줄을 각 방향에서 보면 총 72줄이 되는데 72(18x4)는 토왕지절(土旺之節)로 요임금 탄생 서기전 2372(을축년)년으로 부터 72회(4,320년) 무자년 1948년에 이르러 선천 세계가 끝나고 후천 세계가 시작 되었다는 것이다.(서전에 요임금은 서기전 2372년에 나라를 세웠다고 기록 한다)

 

바둑의 기원설중 하나인 요순설을  주역의 대가가 주역의 본의와 연결 지어 이렇게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이 경외 스럽다. 그러나 이 해석은 견강부회다. 중국에서 발굴된 많은 고대의 바둑판이 모두13도 17도등임을 알고 나면 바둑판속에 해인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김석진의 연구를 머쓱 하게 한다. 주역의 신비화가 가져온 과실이다.주역의 이런 비유와 해석들을 자칭 타칭 현대 주역의 최고 대가란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고괘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간부지고를 아버지의 음난한 첩으로 해석 하는 것이 이제까지의 주역의 일반적인 해석 이다. 춘추전에 나오는 음난한 여자를 고(蠱)라 한다는 영향을 받은 탓이다.

그러나 고를 굳이 음난한 여자라 해석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아버지의 어떤 고민,정도로 보는 것이 고괘의 전체에 나타나는 논지와 부합 되기 때문이다. (육오) 아버지의 음난한 첩을 바로 잡으니

명성을 얻을 수 있다(고형의 해석)가 그것인데 고형(중국 최고의 고거학자)은 (구이)에서 이미 아버지의 규방은 자식이 간섭 할 수 없다는 해석으로 육오의 해석을 부인 하고 있다.

 

간(幹)이 바로 잡다는 정(正)의 다른 자이니 아버지의 허물을 바로 잡으니 명예가 있다로 해석을 해야 (육오)의 바른 해석이다. 고괘는 어려움에 처한 한 집안의 이야기다. 아버지는 무슨 큰 일을 잘못 하고 곤경에 처해 있고 어머니까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갑일을 전후해 중요한 출정을 앞두고 있는 자식은 부모의 일로 동분서주 하고 있다.

 

(초육)   아버지의 잘못을 바로 잡다. 그런 아들이 있다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염려 하면서 끝까지(노력) 하면 길할 것이다.

 

이것을 (상전)은 아들이 아버지의 일을 계승 하는 것이다 한다. 아버지의 허물이나 어머니의 허물은 기본적으로 자식의 허물이기도 하다는 것이 청동기 사람들의 생각이라면 자식의 잘못 또한 부모의 잘못이라는 동양적 사고가 실감 난다.

 

기족 공동체 ,  부족 공동체 속에서 단결과 협동만이 질박한 삶을 영위 할 수 있었던 청동기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의 모습이 잘 반영 되어 있는 모습이다. 아버지의 허물을 고치면 작은 소리는 들어도

끝내는 허물이 없다(구사)가 이를 증명 한다.

 

유교에서 수기치인(修己治人)을 말한다. 자신과 가족등 가까운 곳을 돌보고 큰 것을 추구 하라는 말이다. 고괘는 바로 이 수기치인을 말한다. 수기를 하다가 왕의 일을 돕지 못해도 부끄럽거나 잘못이 아니라 하지 않는가(상구).

 

우리는 언어와 문자를 신격화 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지금 말하는 이름은 엄밀 하게 따져 이름을 가진 사람의 속성이 아니다. 비슷한 근사치를 표시 하는 기호일 뿐이다. 비슷 하기는 하나 실체는 아닌것 이것을 일찍 간파한 붓다는 나의 목마름을 타인이 마시는 물로 대신 할 수 없다고 했다.

 

고괘는 어려움에 처한 내가 그 어려움을 헤쳐 가는 실천적 방법이다. 이 뜻을 간파한 또 한사람의 학자인 권근은 주역천견록에서 이렇게 고괘를 정리 한다.

 

ㅡ 덕있는 자가 백성을 양육 하여 키우는 것이 산이 물(物)을 키워 초목이 무성 해 지면 산 또한 깊어져 울창해 지는 것과 같다. 구태어 나와 남을 비교 하여 무슨 일을 구하려느냐.

 

권근의 고괘에 대한 독후감은 심원 하다. 삶의 길에서 자신을 바로 잡는 일은 언제나 힘든 법이다. 청동기 사람들의 나 닦기를 조선 사람 권근은 이렇게 생각 했다.(정이천)이 말한 어려움을 다스리는 도(治蠱之道)나 (주자)가 말한 폐단이 쌓여 고에 이른것등과는 고괘에 대한 접근 방법이 다르다.

 

 

주역은 지극히 소박하고 질박하다. 청동기 사람들은 점에 무엇인가를 묻기는 했으나 그 점이 미신이거나  망동으로는 전혀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순수 하고 인간적인 고대인의 모습이 아름답고 거룩 하기 까지 할 정도다. 오늘날 23괘 석과불식(碩果不食)을 놓고 온갓 주례사를 늘어 놓고 있는 수많은 해석들을 보면서 청동기 사람들을 생각 한다. 청동기 사람들은 제사에 쓸 과일은 창고에 보관 하지 않았다. 석과불식은 바로 그 뜻이다. 큰 과일은 먹지 않는다. 마지막 과일은 식량 없이 겨울을 날 새를 위해 남겨 놓는다는 식의 주례사가 아닌것이다.

 

주역은 우연인지 필연인지 시간성과 공간성을 담아내고 있다. 시간과 공간속에서는 무엇이나 변한다. 사람도 문화도 문자라고 별 수 있으랴.  오늘 갑골문으로 주역을 읽어본 까닭도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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